라파엘로와 함께 걷는 이탈리아 테마여행 - 우르비노, 피렌체, 로마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사람인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1483–1520)는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화가로, 르네상스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우르비노에서 태어나 궁정 화가였던 아버지 조반니 산티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작업실 분위기를 익혔고, 우르비노–페루자–피렌체를 거치며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린 마돈나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교황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가 바티칸 궁의 ‘라파엘로의 방’과 빌라 파르네지나 같은 대형 프레스코를 남겼다. 그러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37세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고,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예술가와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라파엘로만의 ‘이상향’을 남겼다. 이제 그의 발자취를 따라 그 이상향을 찾아 떠나보자.

 

1. 우르비노에서 만나는 어린 라파엘로

1-1. 라파엘로 생가 – Casa Natale di Raffaello

위치: Via Raffaello, 57, 61029 Urbino PU, 이탈리아

 

우르비노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라파엘로가 실제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15세기에 지어진 이 집은 아버지 조반니 산티의 화실이자 가족의 생활공간이었고,지금은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실내에는 당시 가구와 함께 라파엘로의 초기 작품으로 여겨지는 작은 〈성모자〉와, 아버지와 동시대 화가들의 그림, 드로잉들이 전시돼 있다. 작은 중정에 있는 돌 맷돌은 옛날에 물감을 만들기 위해 안료를 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1-2. 우르비노 두칼레 궁전 & 마르케 국립미술관 (Palazzo Ducale di Urbino)

위치: Piazza Rinascimento, 13, 61029 Urbino PU, 이탈리아

 

우르비노를 르네상스 문화 도시로 만든 인물이 바로 두칼레 궁전을 지은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이다. 라파엘로는 어릴 때부터 이곳을 드나들며 ‘궁정 문화’와 세련된 건축, 원근법이 살아 있는 그림들을 접했다. 오늘날 이 궁전은 마르케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보이는 안정적인 구도와 건축적인 공간 감각은 이런 궁정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2. 피렌체에서 만나는 젊은 거장 라파엘로

2-1.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위치: Piazzale degli Uffizi, 6, 50122 Firenze FI, 이탈리아

 

피렌체는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직접 보고 연구하던 도시다. 우피치에는 그 시기를 대표하는 〈금화조의 성모(Madonna del Cardellino)〉, 〈자화상〉 등 라파엘로의 “젊은 시절 마돈나”들이 소장돼 있다. 레오나르도에게서 빛과 공기의 표현, 미켈란젤로에게서 힘있는 인체를 배웠다고들 한다.

 

2-2. 피티 궁전 (Palazzo Pitti)

위치: Piazza de' Pitti, 1, 50125 Firenze FI, 이탈리아

아르노 강 건너편 피티 궁전의 팔라티나 갤러리에는 〈라 벨라(La Donna Velata)〉, 〈임신부(La Donna Gravida)〉 등 라파엘로의 초상화들이 여러 점 전시돼 있다. 벽과 천장까지 화려한 바로크 장식 속에 라파엘로, 티치아노, 루벤스의 작품들이 층층이 걸려 있어서, “루브르식 살롱 배치”를 좋아한다면 들러 보기를 추천한다.

 

3. 로마 & 바티칸에서 만나는 라파엘로

3-1. 바티칸 박물관 (Musei Vaticani)

위치: 00120 Vatican City, 바티칸 시국

 

라파엘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를 위해 그린 바티칸 궁의 “라파엘로의 방”은 그의 예술의 절정인 곳이다. 특히 〈아테네 학당〉이 있는 ‘서명실(Stanza della Segnatura)’은 철학, 신학, 시, 법학을 상징하는 장면들로 꾸며져 있는데, 고대 철학자들이 웅장한 아치 아래 모여 토론하는 장면은 “인간 이성과 신앙의 조화”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장화와 바로 이어져 있어, 두 거장의 작업을 같은 동선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예술사 여행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3-2. 빌라 파르네지나 (Villa Farnesina)

위치: Villa Farnesina, Via della Lungara 230, 00165 Rome, 이탈리아

 

트라스테베레 지역의 빌라 파르네지나는 은행가 아고스티노 키지가 지은 호화로운 별장이다. 1층 ‘갈라테이아의 로지아’에는 라파엘로의 〈갈라테이아의 승리〉가 있는데, 바다의 님프와 주변의 신화적 존재들이 활기차게 소용돌이친다. 천장에는 큐피드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프레스코가 이어져, 라파엘로가 교황궁에서 그리던 것과는 달리 훨씬 자유롭고 감각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3-3. 판테온 (Pantheon)

위치: Piazza della Rotonda, 00186 Roma RM, 이탈리아

 

라파엘로는 죽기 전에 “나를 판테온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실제로 고대 신전이었던 판테온 안에 묻혔다. 그의 묘 위에는 제자 로렌체토가 만든 〈마돈나 델 사소〉 조각상이 있고, 비문에는 “살아 있을 때는 자연이 그에게 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죽었을 때는 자연도 그와 함께 죽을까 두려워했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라파엘로는 균형·조화·우아함을 상징하는 화가로, 흔히 ‘완성형 르네상스’의 얼굴로 평가된다. 그의 부드러운 구성과 색채, 인물과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어 주는 시선과 제스처는 이후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나아가 19세기 아카데믹 회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쳤다. 라파엘로의 발자취를 따라 우르비노, 피렌체, 로마와 바티칸을 차례로 걸으며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천천히 되짚어 보는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