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삶을 마친, 말 그대로 “프로방스가 낳은 화가”다. 젊은 시절에는 법대를 다니다가 파리로 올라가 미술을 공부했고, 친구인 에밀 졸라와 어울리며 살롱에 도전했지만 혹평과 낙선을 거듭했다. 인상파 전시에도 참여했지만, 그는 색과 빛보다 ‘형태’와 ‘구조’를 집요하게 탐구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생전에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야수파와 입체파에 크게 영향을 미치며,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받는다. 이제 엑상프로방스와 주변을 걸으며 세잔이 바라본 언덕, 나무, 산을 따라가 보자.
1. 엑상프로방스 시내에서 만나는 세잔
1-1. 아틀리에 세잔 (Atelier Cézanne)
위치: 13 Av. Paul Cézanne, 13100 Aix-en-Provence, 프랑스
세잔이 생의 마지막 몇 년(1902–1906년)을 보내며 작업하던 아틀리에다. 천장이 높고 북쪽 창이 크게 나 있어 일정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구조인데, 세잔이 직접 설계해 자기가 원하는 빛을 만든 공간이다. 과일이 담긴 바구니, 기병상의 석고, 병, 병풍 등 정물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던 소품들과 이젤, 옷, 모자까지 그대로 남아 있어, 작품 속 사물을 실제 공간에서 함께 볼 수 있다. 6월 말부터 11월 초까지만 운영하니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1-2. 자스 드 부팡 저택 (Bastide du Jas de Bouffan)
위치: 4 Rue de Valcros, 13090 Aix-en-Provence, 프랑스
18세기 저택인 자스 드 부팡은 1859년 세잔의 아버지가 구입해 가족이 40년 이상 살았던 집이자, 세잔에게는 거대한 ‘야외 화실’이었다. 그는 저택 거실 벽에 직접 대형 벽화를 그리며 실험을 시작했고, 정원과 저택 주변 풍경을 수없이 캔버스에 옮겼다. 〈자스 드 부팡〉,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등 많은 걸작이 이곳 풍경에서 탄생했다. 넓은 정원, 연못,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최근에는 내부 복원과 전시가 진행되어, 세잔의 가족사와 초기 작품 세계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고 있다. 6월 말부터 11월 초까지만 운영하니 홈페이지를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1-3. 그라네 미술관 (Musée Granet)
위치: Pl. Saint-Jean de Malte, 13100 Aix-en-Provence, 프랑스
엑상의 시립 미술관인 그라네 미술관은 오랫동안 세잔에게 차갑게 굴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의 고향 미술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생전에는 작품 기증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세잔의 회화와 드로잉,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보여주며 “세잔 이후”를 조망하는 전시를 꾸준히 연다.
2. 생트 빅투아르 산과 주변에서 만나는 세잔
2-1. 뺭뜨흐 가든 (Jardin des peintres)
위치: 49 Av. Paul Cézanne, 13100 Aix-en-Provence, 프랑스
엑상 구시가지에서 조금만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작은 공원이다. 세잔이 생애 후반에 자주 올라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렸던 포인트다. 공원에는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 시리즈 일부가 패널로 설치돼 있어, 패널 속 풍경과 실제 산을 나란히 보며 감상을 할 수 있다. 세잔은 이 산을 80–100점 이상 반복해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의 형태를 점점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로 바꾸어가며 ‘사과 하나로 파리를 뒤흔들겠다’고 말할 정도로 형태와 색의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늦은 오후, 빛이 기울어 산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간에 가면 세잔이 왜 이 장소에 집착했는지 몸으로 느껴진다.
2-2. 비베뮈 채석장 (Carrières de Bibémus)
위치: 3090 chemin de Bibémus, 13100 Aix-en-Provence, France
엑상에서 바벤느(Vauvenargues)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옛 채석장으로, 노란빛 석회암 절벽과 큼직하게 잘려 나간 바위덩어리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독특하다. 이곳의 바위들은 엑상 시내 건물들을 짓는 데 쓰이던 돌이었고, 세잔은 이 인공적인 절벽과 자연이 맞부딪히는 풍경에 매료되어 여러 점의 풍경화를 남겼다. 그의 비베뮈 그림을 보면 바위와 나무, 하늘이 거의 입체파에 가까운 ‘덩어리’와 ‘면’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피카소와 브라크가 여기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현재는 예약제 가이드 투어로 입장하는 할 수 있다.
2-3. 레스타크(L’Estaque)
위치: L’Estaque, 13016 Marseille, France
마르세유 북쪽의 작은 어촌 레스타크는 세잔이 여러 차례 머물며 바다와 언덕, 집들을 그렸던 장소다. 여기에서 그린 〈마르세유 만, 레스타크에서 본 풍경〉 같은 작품은 단단한 집의 덩어리, 파란 바다, 언덕의 리듬을 단순한 색면과 기하학적 구조로 재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이 풍경은 나중에 브라크와 뒤피, 드랭 등 야수파와 초기 입체파 화가들에게도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고, 실제로 그들 역시 레스타크에 와서 그림을 그렸다.
세잔은 생전에 “투박하다”, “서투르다”라는 조롱을 들으며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인상주의에서 현대미술로 넘어가는 다리”, “현대미술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야수파 화가들은 그의 색과 형태 해체 방식을 계승했고, 마티스와 피카소는 세잔을 두고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고 했다.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평생 고민한 한 화가의 흔적을 따라 남부 프랑스를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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